예전에 한 후배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.
“선배는 무슨 사명감 같은.. 그런걸 같고 있는 것 같아요. 제목 하나 하나에 의미부여 하고, 후속기사랑 사소한 경기같은 것도 다 챙기고…” 아마 내가 후속기사 처리를 제대로 못했다고, 지적을 했었을 때였나보다.
나는 그 이야기에 조금 당황에서 이렇게 얼버부렸다.
“제목에 의미부여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, 후속기사를 챙기는건 당연한 것 같고, 경기를 챙겨야 하는건, 제가 스포츠에 약해서 그래요. 약하니까 더 챙기게 되는.. 그런 거죠 뭐”
이때 나는 ‘사명감’이란 단어에 무척 당황했다. 난 사명감 같은거 없는데… 내가 편집할때 혹시 내 주관을 너무 많이 반영하는게 아닌가… 후배들 눈에도 그런게 띄였나…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됐다. 한편으론, 후배가 그래도 후속기사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아서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.
그로부터 두달 후, 그 후배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. (아마 제목과 관련해서 내가 테클을 걸었던 것 같다 ;; )
“전 언론사에서 일하는게 아니고, 수익을 내야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니까, 제목은 최대한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게 뽑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”
물론 그 후배 말은 120% 맞다. (실제로 제목도 재밌게 잘 뽑는다)
그런데 이어지는 말 “전 기자도 아니고, 저널리즘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…”
난 뭔가 이상했다. 물론 ‘낚시질’은 우리와 공생해야 한다. 하지만 항상 잊지 않아야 할 것은 ‘우리는 뉴스를 다루는 사람들’이란 것이다.
난 이야기를 했다.
“저도 제가 기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, 저널리즘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. 하지만 전 ‘뉴스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’를 알거든요.
기사 하나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말예요. 하지만 이건 제 ‘생각’일 뿐이고, 전 제 생각을 00씨께 조언을 해주는 것이니, 선택은 oo씨가 하는거예요.”
가슴이 답답했다.
물론 뉴스는 인터넷에선 하나의 ‘컨텐츠’일 뿐이다. 하지만, 뉴스는 가끔은 위험해진다.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걸까…
나중에 또 몇달 후, 그 후배와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, ‘피카소’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.
피카소의 추상화는 어떤 면에선 초등학생들의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, 그 그림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구상화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추상화로 표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. 피카소는 구상화를 알지만 더 창조적이고 복잡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‘추상화’라는 표현수단을 선택했다.
한마디로 알고 그리는 그림과, 모르고 그리는 그림의 가치는 다른다.
기사의 내용을 꼼꼼히 읽은 후 핵심을 알고 제목 리라이팅을 하는 경우와,
핵심을 모른채 단순 낚시질을 위해 리라이팅을 하는 경우,
그 제목에서 사용자가 느낄 수 있는 ‘편안함’은 다르다는 뜻이다.
아…
또 단순한 일을 어렵게 생각했다 ㅡㅡ
‘낚시질도 좀 품격있게 하자’는 한마디면 될 것을…
덧붙임) 인터넷 뉴스에 걸리는 제목 한줄 뒤에 있는 나름대로의 고민들이 깊다.
이런 고민들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.